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비록 이제는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물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p.48
고등학교 때 나는 줄곧 혼자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표면적이나마 친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혼자라고 느꼈던건 어딘가 삐걱거리면서 맞지 않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어려웠고 그 때문인지 내면은 외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와도 어울리기 어려웠던 상태. 그때를 떠올리면 외롭고 또 외로워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나. 반에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한없이 마르고 어딘가 약해 보이기도 했던 그에게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붙여주었다. 짝꿍도 여러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모두와 어울리고 싶지 않았고 그건 그와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너무나 의도가 보이는 담임 선생님의 행동이 더욱 싫어 거리를 두려 애썼던 것 같다.
김금희 작가의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을 읽다 보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안녕이라고 제대로 인사한 적 없었고 나란히 앉아 급식을 먹으면서도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눈 적 없었던 나의 모습이 화자와 겹쳐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고3 수험 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또 외로웠던 나의 내면이 그의 내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아마도 견디고 또 견디기만 했겠지. 나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은 대체로 용감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소설이기에 가능하겠지만 대체로 감정이든 관계든 그대로 내버려두는 나와는 달리 연락을 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상대와 무언가를 한다. 내게도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와 나는 덜 외로웠겠지. 그해를 다르게 떠올릴 수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