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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시작한건 2009년의 일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워 매일 울고 싶었던 날들을 견디게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된 직후였기 때문인지 의욕도 넘쳤고 여기서 견디지 못하면 나의 자리는 없을거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은 제대로 쉰 적 없이 매일 같이 출근을 하게 했고 일을 하게 했다. 병가가 아니면 휴가도 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루려고 했던 목표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모르겠다. 내 20대의 열정은 그렇게 절박함으로 치환되었다.

 

2015년, 첫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가 되어서야 조직에 대해, 나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됐다. 당시의 나는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조직에 함몰되어 더이상 발전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포기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 시기를 흘려보내고 나면 영영 그런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고 10개월 정도 이력서를 돌리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는 또 다른 두려움에 휩싸였다. 어디에서도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에 휩싸였다. 생각해보면 나를 움직이게 한건 일종의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그래서 마침내 매일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가 생각났다. 마침 집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있었고 악보를 들고 학원에 갔다.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 같았다. 친절했고 꼼꼼해보였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줄 것 같아서 바로 결제를 하고 그 다음날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서 7분 정도의 거리. 겨울이었고 추워서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두터운 패딩을 뒤집어 쓰고 매일 집과 학원을 오갔다.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학원에 가는 길은 쓸쓸하고 때로는 우울했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활기가 넘쳤다. 약간의 연습과 선생님의 레슨이 끝나면 자유로웠다. 얼마든지 피아노를 쳐도 좋았다. 연습에 몰두하고 나면 서너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았다. 심지어 내 머리 속을 채우던 생각들로부터도 벗어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즐거웠고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머리 속을 떠다니는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이 사라지는 걸 느끼는건 꽤나 좋은 일이었다.

 

어느덧 나는 다시 회사에 다니게 됐다. 세 번째 회사다. 다른 나라에서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건 개인의 삶을 포기하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내 직업적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일을 위해 쓰는 현재의 삶은 개인의 삶이 철저하게 거세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매일 매일의 열심에도 그 열심이 나의 삶이나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때때로 절망스럽다.

 

절망스러운건 내 삶에 피아노가 없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 에너지, 마음. 그런 것이 없는데 일에 대한 열심만 남은 삶이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더이상 두고 볼 수 만은 없다. 피아노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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