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부딪힌다.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이해관계자들 간의 서로 다른 이슈로 인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아주 작은 실수로 인해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한다. 특정 팀의 부서장이 되면 해결해야 하는 이슈와 커뮤니케이션의 양도 늘어난다. 그렇게 잘못된 것들을 하나둘씩 바로잡아 나가다가 보면 하루가 지난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주간 업무 보고에 쓸 만큼의 일을 한 것인지, 사소해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필요하고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은 커뮤니케이션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 하나에 출연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겉에서 보기엔 아이디어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창의적인 영역이 커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커뮤니케이션의 역량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많은 회사들이 조직 규모가 작고, 규모가 크더라도 일반적인 회사와 비교하면 시스템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개인의 역량이 의존하는 경향도 크다. 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인계 매뉴얼이 없다는 것.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일 때가 적지 않다. 나의 경우에도 두 번 회사를 옮겼지만, 인수인계 매뉴얼이나 인수인계를 위한 파일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이유로 내가 얼마나 회사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이후에 내 업무를 담당하게 될 사람을 배려할지에 따라 자료의 양도 자료에 대한 설명도..
세 번째 회사에 출근한지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잠이 오지 않고 잠이 들더라도 쉽게 깼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아침이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입맛도 사라졌다. 의욕도 사라졌다. 우리팀은 회사에 새로 생긴 팀이었고 나는 새로운 팀의 새로운 팀장이었다. 팀이 생기기 바로 직전 입사했고 1개월 후 팀원들이 입사했다. 나는 회사에 대해 잘 몰랐고 회사도 팀원들도 나에 대해 몰랐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적응해야했고 팀을 안착 시켜야겠다. 주변의 시선도 좋지 않았다. 예전과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내부 직원들을 설득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팀원들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듯 했다. 당연했다. 나는 회사에 대해 몰랐고 그들이 질문을 할 ..
매일 눈여겨 보는 곳이 있었다. 자주 다니는 길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어떤 가게가 들어왔다가 사라지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눈에 들어온 곳이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사무실이 있는 그 동네는 거주지였던 곳이 상권으로 바뀌기 시작해 주택을 상가로, 빌라를 건물로 올리는 공사가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그 가게도 그 중 하나였다. 주택의 골조는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을 하여 상가로 쓰고 있었는데 그 가게는 본래 차고지였던 위치였다. 차고지 특성상 카운터에서 밖에 오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더 눈길이 갔다. 꽃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키우는 화분들의 영향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가게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분이 있었고 드라이 플라워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건 2009년의 일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워 매일 울고 싶었던 날들을 견디게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된 직후였기 때문인지 의욕도 넘쳤고 여기서 견디지 못하면 나의 자리는 없을거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은 제대로 쉰 적 없이 매일 같이 출근을 하게 했고 일을 하게 했다. 병가가 아니면 휴가도 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루려고 했던 목표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모르겠다. 내 20대의 열정은 그렇게 절박함으로 치환되었다. 2015년, 첫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가 되어서야 조직에 대해, 나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됐다. 당시의 나는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조직에..
한 번의 이직으로 두 개의 회사에 근무하고 그마저도 그만두었을 때의 마음은,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회사가 아닌 개인 스스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일에 대한 만족감이라든가 보람 같은)을 챙겨야만 등가교환이 가능한 연봉과 복지 수준은 물론이거니와 밸런스가 무너진 삶을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끊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는 기획자로서의 방향성 문제가 트리거가 됐다. 기획이라는 건, 기획자로 산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선보이는 일이다. 누군가의 공연을, 누군가의 음악을, 대리하여 기획하고 제작하는 역할이 하더라도 기획자의 삶이, 그의 취향이, 가치관이 반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궤적을 떠올리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다녔던 것이 대부분이다. 전공을 택할 때도, 그런 전공과 무관해보이는 직업을 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택한 직업이 공연 기획. 그것도 대중 음악 공연(즉, 콘서트)이었다. 남들보다 음악을 더 좋아해서도, 특출나게 그 분야에 대해 뭔가 더 알아서도 아니었다. 음악보다는, 공연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꼈다. 현장감. 그게 좋았다. 실시간이라는 현장성과 수정도 반복도 불가능한 그 사실에 오롯이 매료 되었다. 물론 공연도 반복된다. 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반복이 아닐 뿐이다.
- Total
- Today
- Yesterday